다양성
대한민국에서 점차 민주주의가 실현되어가고, 민주주의의 또 다른 이름인 다양성을 인정하는 분위기 역시
서서히 만들어져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사회에 갈수록 집단 간의 극한 대립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 단순하게 권력이나 권위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진 것이지 다양성에 대한 인정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중에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있다.
또, 흔히 자신이 헤어지거나 결혼을 못하는 이유는 ‘그 혹은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하면서도,
바로 그 순간에 남의 연애 사정 이야기를 들으면 ‘그냥 결혼해’라고 쉽게 말한다.
이런 일은 왜 일어날까? 그러면 보통 다들 그 이유를 알고 있다.
로맨스와 불륜 같은 것으로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건, 사람이 다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니까 그렇지’라는 정말 깨달은 자 같은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비슷한 문제를 조금만 더 확장 해 보면, 우리는 쉽게 바보가 되곤 한다.
‘국회의원들이 하는 게 뭐 있어?’ ‘선생이 하는 게 뭐 있어.’ ‘의사들 돈 진짜 쉽게 버네.’라고 이야기하면서
그게 절대적인 사실이라고 믿는다. 이런 사람들에게 그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뭐 별거 없네’라며 이야기를 하면
광분하면서 자신의 일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 일인지 기를 쓰고 설명하며 덤벼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이 겪어 본 일이 아니면 잘 알 수 없는 ‘인간’이다. 그것을 로맨스 같은 문제에서는 쉽게 인정하지만,
오히려 조금 복잡한 일에 대해서는 자기가 다 안다고 생각하는 이상한 습성이 있다.
예를 들어, 남자인 내가 아무리 교육이나 책을 통해서 출산의 과정과 고통을 학습한다고 해서
출산에 대해 과연 정확하게 알 수 있을까? 내가 그 고통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없을 것이다.
또, 병영체험 갔다 온 여대생이나 공익근무를 한 남성들 그리고 4주 기본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신들이 군대에 대해서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실에 대해 현역 제대한 예비역들에게
물어보면 코웃음을 친다. 공익근무를 한 사람은 평생 현역에 대해 이해할 수 없고, 현역을 갔다 온 사람은
공익근무요원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자기가 듣고, 읽고, 보고, 조그만 체험이라도 했다면
‘나는 안다’라는 절대자적 경지로 자신을 이끌어 간다.
자기는 안다는 그 작은 가정 때문에 우리 사회에 첨예한 대립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최근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행위가 늘어나는 것도 이것과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나는 안다’라는 절대적인 믿음처럼 유일신이 주는 편안함과 편리함 때문에
다른 것을 인정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일단 내가 안다라고 생각하면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너무나 편리한 것이다.
그 사실에 대해 비판적으로 고민할 필요도 없고, 모든 것을 그것에 맞춰 합리화하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학교 시절 기예론을 보면서 ‘저런 바보 같은 사람이 있나’ 생각했지만,
현실에서는 우리가 저런 바보인 것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한, 우리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나만 그리고 내 것만 옳다고 믿는 한...